그동안 한국의 의학교육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에 힘입어, 그 결과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의학교육전문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고, 더 많은 자원들이 투입되고 있으며, 생소하던 ‘성과중심교육’, ‘사회적 책무’와 같은 개념들이 이제는 우리 의학교육에 익숙한 핵심 가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역할이 무척 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년 의료체계 개편의 사태로 인해 또 다른, 더 큰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최근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의료체계 개편을 두고 벌어진 의정갈등과 이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시각, 의료계 내의 전통적인 유대관계 해체, 모든 의료계를 대표할 수 있는 권위와 존경받는 기관의 부재 등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았던 노력과 성과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사업 목적을 보면 ‘의학교육의 수월성’과 ‘사회적 책무’로 수렴될 수 있습니다. ‘의학교육의 수월성’은 여러 의학교육전문가들의 숙의와 합의의 과정을 통해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만, ‘사회적 책무’는 분명 우리 의료계 인사들의 의견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적 계약’의 하나로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반영되어야 하는 부분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어떤 잔치를 더 잘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요리사가 아니라 손님이다.The guest will judge better of a feast than a cook’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Politics)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맥락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문장 자체로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아무리 요리사가 솜씨를 뽐내며 요리를 만들어도, 그 음식을 손님이 외면해 버린다면, 그 요리사가 어떤 재료와 무슨 기구와 어떠한 조리법으로 조리를 했는가 하는 것은 무의미해져 버립니다.

국민은 무엇 때문에 우리 의료계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거나 나아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었을까요? 그동안 우리 의료계는 분명 사회적 책무를 큰 화두로 생각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작년의 사태를 보면서 국민은 그것을 인지하거나 인정해주는 태도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 나가고 있는 목표와 국민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완전히 혹은 일부가 다를 수도 있고, 몇 가지 오해와 억측들로 인해 의료계와 국민이 소원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든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주체는 우리 의료계이고 또한 반드시 풀어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공정한 잣대로 의과대학의 의학교육 수월성과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대외적으로 공포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자세하게 국민에게 안내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단순히 사회적 타율에 의한 규제로부터 우리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불화는 불신에서 시작됩니다. 불신을 믿음으로 변화하려면, 먼저 사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동의가 이루어지고 신뢰의 단계로 나아가 믿음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좋은 의사, 행복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교육의 질을 관리하고 개선하는 의과대학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활동을 교육, 의료계 나아가 국민에게 친절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아가 의과대학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을 포함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한국의학교육학회, 의료기관 등의 관련기관이 모두 힘을 합쳐 국민건강과 국민복지의 개선 혹은 이에 기여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홍보하고 설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쌓아오고 있는 노하우와 성과는 지속적인 검토와 개선을 통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주십시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시스템은 ‘의학교육의 수월성’에 대한 신뢰의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의과대학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활동과 노력, 나아가 ‘사회적 책무’와 관련된 의학교육계의 고민과 합의가 국민에게 제대로 널리 전달될 수 있도록 홍보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 주십시오. 의료계를 대표할 마땅한 기구나 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분명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역할과 함께 의과대학이 해 나갈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의평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