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ACCREDITATION STANDARD
'평가인증' 이 힘든 것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해야할까?
박연철 인증기준위원(연세원주의대)
의과대학 평가인증은 평가인증 관계자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평가를 준비하는 피평가대학은 2년간 혹은 4년간 교육을 위해 노력했던 사항들을 평가보고서에 담기 위해 많은 인력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들인다. 평가하는 입장에서도 약 3일간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피평가대학이 오랜 기간 교육을 위해 노력해 온 내용들을 확인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오죽했으면 인증 피로(accreditation fatigue)라는 말이 새로 생길 정도이니 말이다. 준비하는 입장도 힘들고 평가하는 입장도 힘든 평가인증제도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고, 왜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불만 섞인 질문은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질문일 것이다.
도대체 평가인증은 어떻게 시작하였고, 누가 만들었을까? 그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910년 미국 의학교육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에이브러험 플렉스너(Abraham Flexner)는 1908년 '미국의 대학: 비평' 이라는 책을 1908년 출판한 후 카네기 재단의 위임을 받아 미국과 캐나다의 의과대학들을 평가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플렉스너 보고서(Flexner Report) 를 출간하였다. 플렉스너보고서는 평가인증의 효시라 할 수 있으며, 미국 의학교육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83년에 JAMA에 실린 의학교육 인증의 역사와 관련된 논문에서도 실제 미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impact)을 미친 사건을 플렉스너 보고서라고 하였다. 플렉스너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1880년대부터 1910년까지 의과대학이 종합대학의 일부가 되면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오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대학의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어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의과대학이 병원과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해 임상 교육과 연구가 매우 부진하다는 점이었다.
플렉스너 보고서로 나타난 변화는 우선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학교가 도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플렉스너 보고서가 나온 당시 1910년 미국의 의과대학 수가 155개였으나 1922년 81개, 1929년에는 76개로 감소하였다. 다음으로는 의학교육에 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1913년부터 1928년까지 15년 동안 록펠러재단에서 5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의학교육 개선에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의과대학생 선발 기준을 객관화하고, 고등학교 또는 그 이하 교육수준의 의과대학 입학조건을 점차 강화시켜 실제 의학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플렉스너 보고서를 통해 의과대학 교육이 변화하자 미국에서는 인증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1942년에는 의학교육평가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전담 기구인 의학교육평가인증원 LCME(the Liaison Committee on Medical Education)을 창립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와 한국의학교육학회 등이 논의하여 1997년부터 의과대학 인정평가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고, 이듬해인 1998년 7월에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ABMEK)를 설립하였다. 이 위원회가 한국의학교육평가원(KIMEE)의 바탕이 되었다.
그렇다면 평가인증을 하는 목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목적은 '국민 의료복지의 증진과 국민 보건 향상의 이념을 바탕으로, 의료 관련 서비스의 질 향상과 의료인력의 질적 보장을 위한 사업의 수행'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사업으로 의학교육의 질적인 발전과 의학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의학교육기관에 대한 평가인증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가인증이 정말로 유효한 평가인가? 평가인증 결과가 의학교육의 질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우선 평가의 유효성은 여러가지 타당도 연구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1998년 Academic medicine에 실린 연구에 의하면 44개의 LCME 인증기준에 대해 1659명의 의학교육 관련 이해관계자 대상으로 내용타당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5점 만점에 평균이 3.94에서 4.87로 타당성을 입증하였다. 우리나라도 2000년에 41개 의과대학 662명의 교수를 대상으로 87개 인증기준에 대해 조사한 결과, 5점 만점에 평균이 3.8에서 4.49로 나타났다. 비록 내용타당도에 대한 연구이기는 하지만 평가인증기준이 여러 전문가에 의해 타당성을 확보하였다.
다음으로 평가인증 결과가 의학교육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의학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는 의사국가고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평가인증 결과가 의학교육에 미친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평가인증을 받은 대학과 인증유예나 불인증 등 평가인증을 통과하지 못한 대학의 의사국가고시 성적을 비교를 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는 않다. 현재 미국, 캐나다,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모든 의과대학이 평가인증을 통과를 한 상황이다. 평가인증을 시행하지 않은 나라와 시행한 나라의 국가간 비교를 해 볼 수도 있지만 나라별 그리고 학교별로 표준화된 입학사정기준, 성적처리기준 등이 다르기에 비교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평가인증이 학생의 수행능력에 도움이 된다라는 연구들이 있다. 2012년 Medical Education에 멕시코와 필리핀 의과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실렸다. 학생들의 성과는 USMLE 성적을 기준으로 확인하였고, 실제 평가인증을 받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 간의 유의미한 성적 차이가 USMLE 전체 step에서 확인되었다. 또한 2013년에 카리브 해안의 의과대학과 그 외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한번에 USMLE step 2를 합격하는 비율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평가인증을 받은 학교와 받지 않은 학교 간에 합격률이 유의한 차이가 있음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통해 평가인증결과는 의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향상과 연결되어 결국 학생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라 할 수 있다.
물론 평가인증은 번거롭고 힘들다. 하지만 평가인증 결과로 인한 변화로 의과대학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평가결과로 나타나는 학교의 변화와 학생들의 성과를 보면 또 그만큼 보람 찬 일이 평가인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학교육의 질적향상과 의학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의학교육 평가인증을 통해 다양한 역량을 갖춘 미래의료인력을 양성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갖고, 더나아가 실제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 국민 보건을 향상시킨다는 자부심을 가진다면 비록 힘든 일이지만 충분히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